아프리카 출장기
3년만에 찾은 아프리카
글 이철순 상임이사
기후변화
탄자니아 하늘에서 내려다보이는 킬리만자로, 늘 하얀 눈과 얼음으로 덮여있던 산이 이젠 마치 벌거벗은 산처럼 보였다. 이런 현상은 탄자니아 어디에서도 쉽게 볼 수 있었다. 자동차로 사업지인 도도마시의 마쿨루로 가는 길, 들판에 심어진 곡식들은 이미 메말라 있었다. 그런 길을 1시간을 달리니 희망재단과 현지 파트너 단체 IYO가 함께 건립한 학교 빗물집수탱크가 보였다. 내리는 비의 양이 소량에 그쳐 빗물집수탱크에 모은 물로는 가뭄을 이겨내는 데 역부족이었다. 목마른 주민들이 물을 찾아 마른 강가에서 모래를 파놓고 물이 고이기를 기다리는 모습이 너무도 안타까웠다.

탄자니아 하늘에서 본 눈 녹은 킬리만자로 ⓒ한국희망재단
빗물집수탱크로는 식수를 해결할 수 없는 지금, 마을과 학교 학생들이 마음 놓고 마시고 사용할 수 있도록 식수 개발이 시급하다. 이곳뿐만 아니라 우간다에서도 마을마다 한 개의 우물 펌프 앞에 수많은 주민과 아이들이 물통을 줄지어 늘어놓고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러다 밤을 지새우기도 하고 결국 물이 끊겨 빈 통으로 돌아가야 하는 날도 허다하다. 우연히 펌프에 매달려 물을 퍼 올리다가 힘이 빠져 주저앉는 아이가 눈에 띄었다. 결국 어린 동생을 불러 함께 물을 푸는 아이들의 모습이 애처로웠다.

우간다 루웨로 지역 우물가, 줄지어 차례를 기다리는 주민 ⓒ한국희망재단
아프리카 대부분의 지역은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식수마저 구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가뭄이 이어지고 있다. 식수 시설도, 농수시설도 부족해 가난한 농가에서는 농산물을 생산할 수 없고, 농사를 짓는다고 하더라도 수확량이 현저히 적어 굶주리는 주민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다 보니 가난의 악순환은 여전해 학교에 가야 하는 아이들이 학교에 가지 못하고, 학교에 다니던 아이들조차도 중단해야 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가뭄으로 메마른 작물 ⓒ한국희망재단
반면, 탄자니아 마사이 부족 마을에 세워진 엔데베시초등학교는 학생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현재 아이들 240여 명이 공부하고 있다. 원래 이곳 부족의 부모들은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았다. 현지 파트너 단체 더그레일탄자니아(The Grail Tanzania, 약칭하여 이하 더그레일)의 오랜 노력의 결과로 이제는 부족민 대부분이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야 한다는 의식을 갖게 되었다. 처음엔 아이들뿐만 아니라 부모들도 탄자니아 공용어인 스와힐리어를 배우거나 사용하지 않고 마사이 부족어인 마어(Maa)로만 소통하다 보니 탄자니아 사회 안에 통합되지 못했다. 그런 주민들이 스와힐리어를 배우고 나니 자신감이 생겨 지역 시장에 나가 장사도 하게 되었다. 마사이 부족의 주식이던 육식과 우유만 고집하지 않고, 들판을 개간해서 옥수수와 콩을 심어 식생활 개선에 성공했다는 사실도 마을 행사에 차려진 음식을 보고 알 수 있었다. 가뭄으로 가축 키우기가 힘들어져 가고, 가축들이 잘 먹지 못하니 새끼를 잘 낳지 못한다며 걱정 하면서도 채소는 가축이나 먹는 것이라고 섭취를 거부하던 부족이 변화를 시작한 것이다.
아이들의 학교 교육도 마찬가지였다. 생활이 힘들어 아이들을 학교에 보낼 수 없었고, 우기가 끝난 뒤 남자들이 가축을 끌고 멀리 이웃 나라로 떠나고 나면 아이들이 소와 염소 키우는 일을 해야 했다. 이들은 아이가 학교에 가는 것보다는 가축을 돌보고 물을 길어오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여겼다. 그러다 엔데베시 마을에 학교가 서고,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학교에 보내야 한다는 중요성을 일깨워준 더그레일의 노력으로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학교 가야 할 나이의 아이들을 숨기고 학교에 보내기보다는 당장 어려운 집안일을 하길 바라는 부모들도 여전히 많다고 한다. 언젠가 이들도 아이들에게 공부할 기회를 열어줄 수 있도록 우리들의 노력은 계속될 것이다.

엔데베시초등학교 아이들 ⓒ한국희망재단
코로나19가 할퀴고 간 자리
우간다 글루 지역 사업지로 향하던 길, 학교에서 귀가하는 여학생들이 아이들을 안고 혹은 손을 잡고 가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저 학생들은 동생을 데리고 학교에 가나 하는 나의 질문에 희망재단의 우간다 현지 파트너단체 중 하나인 NWODI의 활동가 트레이시가 답을 주었다. 동생이 아니라 그들의 아이라는 것이다. “무슨! 어떻게 중학교 학생들이?”라는 내 반응에, 지금 만약 자녀가 있는 학생들이 학교에 나오지 않는다면 문 닫는 중학교들이 많을 것이라고 답했다. 여학생들의 거의 40% 이상이 아이가 있어서 아이들을 못 데리고 오게 하거나 아이가 있는 학생들을 못 오게 한다면, 학교가 있어야 할 이유가 없는 상황이었다. 아이가 있는 엄마 학생들에게 공부를 계속할 수 있게 한 것이 그래도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그런데 그 이유가 너무 안타까웠다. 코로나19 때 우리나라와 달리 이곳은 학교뿐 아니라 모든 곳의 출입이 중지되었다. 그러나 집안에 식수시설이 없으니 멀리 물을 길러 가야만 했다. 물을 긷는 일은 여자와 아이들이 주로 하는데 사람이 너무 많아 3시간을 기다려 겨우 물 한 통을 받아 집에 오면 남편이 아내의 외도를 의심하며 폭력을 쓰는 일이 다반사였다. 여자아이의 경우는 더 힘든 상황에 놓여있었다. 코로나로 스트레스가 쌓인 이웃 남성들의 희생양이 되어 성범죄의 표적이 되기도 하고, 물을 길러 다녀오다 일을 당해 아이를 갖는 경우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 위해 희망재단은 우간다 람워 구에서 청소년들에게 라디오를 나누어주고 집에서 음악을 틀고 춤을 추며 에너지를 발산하게 하였다. 그리고 학교에 오지 못한다고 학업을 포기하지 않도록 라디오 수업을 진행하고, 교사들이 학생 한 명 한 명에게 연락하여 고민은 없는지, 공부하는 데 어려움은 없는지 물어보며 함께했다. 여자아이들은 집에서 벗어나 봉제 기술을 배우도록 하고, 그 기술로 면생리대를 만들어 나누게 하는 기회를 열어주었다. 이렇게 시간을 함께 보내면서 더불어 살아가는 이웃이 있음을 깨닫고 나누는 프로그램은 위기 속에 처해있는 아이들에게 큰 도움이 되고 있었다. 현지 파트너 단체 PHU의 노력의 결실로 이루어진 이런 일련의 성과들에 현지 시장이 칭찬과 고마움을 전하기도 했다고 한다.

봉제기술을 배우는 우간다 여자아이 ⓒ한국희망재단
희망재단이 우간다 글루에서 현지 파트너단체 NWODI와 시작한 봉제와 미용 기술 프로그램에 참여한 50여 명의 아이들은 하나같이 아이들의 엄마였다. 나이는 어리지만 책임질 아이가 있는 이들은 ‘학교에 가기보다 앞으로 아이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기술이 필요하다’며 해맑은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리고 자신들의 아이들을 안고 몰려와 배운 기술을 보여주며 기회를 주어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당황스러웠지만 그들의 해맑은 얼굴을 보며 걱정이 되거나 화가 나기보다는 오히려 안심이 되었다. “그래, 이 기술이 너희들의 삶에 희망이 되어주길 바랄게.”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꿈을 실현해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우간다 내전 당시,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위안부가 되었던 전쟁피해여성들은 전쟁이 끝난 후 고향에 돌아왔으나 아무도 사람 취급을 해주지 않는 상태에서 피해자들끼리 모여 모임을 조직하였다. 이들은 자신들의 꿈을 향해 최선을 다해 살아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희망재단과 함께한 양돈사업으로 이들에게 전해진 돼지는 큰 희망이 되었다. 새끼돼지들은 잘 자라 7개월 만에 새끼를 낳아주었다. 한 마리가 8마리를, 또 한 마리는 6마리의 새끼를 낳아 마을엔 경사가 났다. 이제부터 2개월 후엔 새끼돼지 한 마리당 140불씩 받을 수 있어, 돈을 만질 수 있으니 이보다 더 큰 경사가 있겠는가? 하지만 이젠 돈만 생각하지 말고 돼지 한 마리는 잡아 마을 사람들과 함께 먹으며 즐거운 시간도 만들면 어떠냐고 제안을 했다. 그러자 다음번 내가 방문하는 날을 미리 알려주면 그 날에 맞춰 잔치를 열겠다고 한다. 나는 손사래를 쳤다. 내가 방문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여러분이 함께 즐겁게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무엇보다 그들의 밝은 얼굴에서 희망을 읽을 수 있다는 점이 고맙고 뿌듯했다.

우간다 전쟁피해여성 조직이 키운 돼지와 새끼돼지 ⓒ한국희망재단
또 다른 그룹인 아나카 지역의 여성그룹은 회원 45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희망재단은 이들과 3년에 걸쳐 함께하고 있다. 농사에 필요한 농기구와 소 2마리, 돼지 8마리를 구매하고 방앗간을 짓는데 함께했고, 이 사업을 통해 그들은 이익금을 모았다.
그 돈으로 그들의 오랜 꿈인 땅 1헥타르를 구입하여 그 위에 농산물 총판장을 열어 갈 건물을 지었다. 이제 한 푼도 안 남았다고 하는 그들의 얼굴에서 희망찬 미래가 엿보였다. 이들은 지금껏 돈을 모아 총판장을 하려는 꿈을 이루기 위해 가난하게 살았지만, 이제부터는 수익금으로 집도 고치고 사람답게 살겠다는 의지를 보인다. 그러면서 희망재단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며 귀한 닭 2마리를 나에게 선물했다. 지금은 일하는 철이라 몸과 얼굴이 마르고 형편없어 보이지만 이 기간이 지나면 더 좋은 모습의 자신들을 볼 수 있을 거라고 수줍게 말했다. 그렇게 험한 생을 살았으면서도 어쩌면 이렇게 아름다운 마음을 간직할 수 있을까 생각하니 이들이 한없이 존경스러워지기까지 했다.
수줍게 닭을 선물하는 아름다운 마음의 우간다 아나카 그룹 여성 ⓒ한국희망재단
이번 현지 방문은 코로나 기간에 전화통화나 인터넷 화상 연결로만 사업을 확인하고 안부를 물을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서 벗어나, 그들을 현장에서 만날 수 있어서 무엇보다 기쁘고 반가운 시간이었다. 그동안의 사업 진행은 이메일이나 전화통화로 충분히 확인했지만 눈으로 보니 코로나 19의 피해는 더욱 심각하게 와닿았다. 물론 어려운 중에도 그들의 성실함은 더욱 빛을 발해, 나름의 성과를 거두며 발전하고 있어 감동을 주었다.
현지 파트너 단체의 노력과 수고가 얼마나 큰 것인지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고 고마운 마음이었다. 기후변화로 인한 식수 개발의 시급성, 어린이들을 위한 교육과 어린 나이에 엄마가 된 한부모들을 위한 교육과 자립 등 많은 과제를 확인하며 희망재단의 역할을 더욱 다짐하고 확신하는 시간이었다.
작성 / 한국희망재단 이철순 상임이사
편집/ 이인선 홍보 담당, 이지영 인턴
후원문의
02-365-4673
#자립이희망입니다
#한국희망재단
아프리카 출장기
3년만에 찾은 아프리카
글 이철순 상임이사
탄자니아 하늘에서 내려다보이는 킬리만자로, 늘 하얀 눈과 얼음으로 덮여있던 산이 이젠 마치 벌거벗은 산처럼 보였다. 이런 현상은 탄자니아 어디에서도 쉽게 볼 수 있었다. 자동차로 사업지인 도도마시의 마쿨루로 가는 길, 들판에 심어진 곡식들은 이미 메말라 있었다. 그런 길을 1시간을 달리니 희망재단과 현지 파트너 단체 IYO가 함께 건립한 학교 빗물집수탱크가 보였다. 내리는 비의 양이 소량에 그쳐 빗물집수탱크에 모은 물로는 가뭄을 이겨내는 데 역부족이었다. 목마른 주민들이 물을 찾아 마른 강가에서 모래를 파놓고 물이 고이기를 기다리는 모습이 너무도 안타까웠다.
탄자니아 하늘에서 본 눈 녹은 킬리만자로 ⓒ한국희망재단
빗물집수탱크로는 식수를 해결할 수 없는 지금, 마을과 학교 학생들이 마음 놓고 마시고 사용할 수 있도록 식수 개발이 시급하다. 이곳뿐만 아니라 우간다에서도 마을마다 한 개의 우물 펌프 앞에 수많은 주민과 아이들이 물통을 줄지어 늘어놓고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러다 밤을 지새우기도 하고 결국 물이 끊겨 빈 통으로 돌아가야 하는 날도 허다하다. 우연히 펌프에 매달려 물을 퍼 올리다가 힘이 빠져 주저앉는 아이가 눈에 띄었다. 결국 어린 동생을 불러 함께 물을 푸는 아이들의 모습이 애처로웠다.
우간다 루웨로 지역 우물가, 줄지어 차례를 기다리는 주민 ⓒ한국희망재단
아프리카 대부분의 지역은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식수마저 구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가뭄이 이어지고 있다. 식수 시설도, 농수시설도 부족해 가난한 농가에서는 농산물을 생산할 수 없고, 농사를 짓는다고 하더라도 수확량이 현저히 적어 굶주리는 주민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다 보니 가난의 악순환은 여전해 학교에 가야 하는 아이들이 학교에 가지 못하고, 학교에 다니던 아이들조차도 중단해야 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가뭄으로 메마른 작물 ⓒ한국희망재단
반면, 탄자니아 마사이 부족 마을에 세워진 엔데베시초등학교는 학생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현재 아이들 240여 명이 공부하고 있다. 원래 이곳 부족의 부모들은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았다. 현지 파트너 단체 더그레일탄자니아(The Grail Tanzania, 약칭하여 이하 더그레일)의 오랜 노력의 결과로 이제는 부족민 대부분이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야 한다는 의식을 갖게 되었다. 처음엔 아이들뿐만 아니라 부모들도 탄자니아 공용어인 스와힐리어를 배우거나 사용하지 않고 마사이 부족어인 마어(Maa)로만 소통하다 보니 탄자니아 사회 안에 통합되지 못했다. 그런 주민들이 스와힐리어를 배우고 나니 자신감이 생겨 지역 시장에 나가 장사도 하게 되었다. 마사이 부족의 주식이던 육식과 우유만 고집하지 않고, 들판을 개간해서 옥수수와 콩을 심어 식생활 개선에 성공했다는 사실도 마을 행사에 차려진 음식을 보고 알 수 있었다. 가뭄으로 가축 키우기가 힘들어져 가고, 가축들이 잘 먹지 못하니 새끼를 잘 낳지 못한다며 걱정 하면서도 채소는 가축이나 먹는 것이라고 섭취를 거부하던 부족이 변화를 시작한 것이다.
아이들의 학교 교육도 마찬가지였다. 생활이 힘들어 아이들을 학교에 보낼 수 없었고, 우기가 끝난 뒤 남자들이 가축을 끌고 멀리 이웃 나라로 떠나고 나면 아이들이 소와 염소 키우는 일을 해야 했다. 이들은 아이가 학교에 가는 것보다는 가축을 돌보고 물을 길어오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여겼다. 그러다 엔데베시 마을에 학교가 서고,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학교에 보내야 한다는 중요성을 일깨워준 더그레일의 노력으로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학교 가야 할 나이의 아이들을 숨기고 학교에 보내기보다는 당장 어려운 집안일을 하길 바라는 부모들도 여전히 많다고 한다. 언젠가 이들도 아이들에게 공부할 기회를 열어줄 수 있도록 우리들의 노력은 계속될 것이다.
엔데베시초등학교 아이들 ⓒ한국희망재단
우간다 글루 지역 사업지로 향하던 길, 학교에서 귀가하는 여학생들이 아이들을 안고 혹은 손을 잡고 가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저 학생들은 동생을 데리고 학교에 가나 하는 나의 질문에 희망재단의 우간다 현지 파트너단체 중 하나인 NWODI의 활동가 트레이시가 답을 주었다. 동생이 아니라 그들의 아이라는 것이다. “무슨! 어떻게 중학교 학생들이?”라는 내 반응에, 지금 만약 자녀가 있는 학생들이 학교에 나오지 않는다면 문 닫는 중학교들이 많을 것이라고 답했다. 여학생들의 거의 40% 이상이 아이가 있어서 아이들을 못 데리고 오게 하거나 아이가 있는 학생들을 못 오게 한다면, 학교가 있어야 할 이유가 없는 상황이었다. 아이가 있는 엄마 학생들에게 공부를 계속할 수 있게 한 것이 그래도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그런데 그 이유가 너무 안타까웠다. 코로나19 때 우리나라와 달리 이곳은 학교뿐 아니라 모든 곳의 출입이 중지되었다. 그러나 집안에 식수시설이 없으니 멀리 물을 길러 가야만 했다. 물을 긷는 일은 여자와 아이들이 주로 하는데 사람이 너무 많아 3시간을 기다려 겨우 물 한 통을 받아 집에 오면 남편이 아내의 외도를 의심하며 폭력을 쓰는 일이 다반사였다. 여자아이의 경우는 더 힘든 상황에 놓여있었다. 코로나로 스트레스가 쌓인 이웃 남성들의 희생양이 되어 성범죄의 표적이 되기도 하고, 물을 길러 다녀오다 일을 당해 아이를 갖는 경우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 위해 희망재단은 우간다 람워 구에서 청소년들에게 라디오를 나누어주고 집에서 음악을 틀고 춤을 추며 에너지를 발산하게 하였다. 그리고 학교에 오지 못한다고 학업을 포기하지 않도록 라디오 수업을 진행하고, 교사들이 학생 한 명 한 명에게 연락하여 고민은 없는지, 공부하는 데 어려움은 없는지 물어보며 함께했다. 여자아이들은 집에서 벗어나 봉제 기술을 배우도록 하고, 그 기술로 면생리대를 만들어 나누게 하는 기회를 열어주었다. 이렇게 시간을 함께 보내면서 더불어 살아가는 이웃이 있음을 깨닫고 나누는 프로그램은 위기 속에 처해있는 아이들에게 큰 도움이 되고 있었다. 현지 파트너 단체 PHU의 노력의 결실로 이루어진 이런 일련의 성과들에 현지 시장이 칭찬과 고마움을 전하기도 했다고 한다.
봉제기술을 배우는 우간다 여자아이 ⓒ한국희망재단
희망재단이 우간다 글루에서 현지 파트너단체 NWODI와 시작한 봉제와 미용 기술 프로그램에 참여한 50여 명의 아이들은 하나같이 아이들의 엄마였다. 나이는 어리지만 책임질 아이가 있는 이들은 ‘학교에 가기보다 앞으로 아이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기술이 필요하다’며 해맑은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리고 자신들의 아이들을 안고 몰려와 배운 기술을 보여주며 기회를 주어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당황스러웠지만 그들의 해맑은 얼굴을 보며 걱정이 되거나 화가 나기보다는 오히려 안심이 되었다. “그래, 이 기술이 너희들의 삶에 희망이 되어주길 바랄게.”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꿈을 실현해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우간다 내전 당시,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위안부가 되었던 전쟁피해여성들은 전쟁이 끝난 후 고향에 돌아왔으나 아무도 사람 취급을 해주지 않는 상태에서 피해자들끼리 모여 모임을 조직하였다. 이들은 자신들의 꿈을 향해 최선을 다해 살아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희망재단과 함께한 양돈사업으로 이들에게 전해진 돼지는 큰 희망이 되었다. 새끼돼지들은 잘 자라 7개월 만에 새끼를 낳아주었다. 한 마리가 8마리를, 또 한 마리는 6마리의 새끼를 낳아 마을엔 경사가 났다. 이제부터 2개월 후엔 새끼돼지 한 마리당 140불씩 받을 수 있어, 돈을 만질 수 있으니 이보다 더 큰 경사가 있겠는가? 하지만 이젠 돈만 생각하지 말고 돼지 한 마리는 잡아 마을 사람들과 함께 먹으며 즐거운 시간도 만들면 어떠냐고 제안을 했다. 그러자 다음번 내가 방문하는 날을 미리 알려주면 그 날에 맞춰 잔치를 열겠다고 한다. 나는 손사래를 쳤다. 내가 방문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여러분이 함께 즐겁게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무엇보다 그들의 밝은 얼굴에서 희망을 읽을 수 있다는 점이 고맙고 뿌듯했다.
우간다 전쟁피해여성 조직이 키운 돼지와 새끼돼지 ⓒ한국희망재단
또 다른 그룹인 아나카 지역의 여성그룹은 회원 45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희망재단은 이들과 3년에 걸쳐 함께하고 있다. 농사에 필요한 농기구와 소 2마리, 돼지 8마리를 구매하고 방앗간을 짓는데 함께했고, 이 사업을 통해 그들은 이익금을 모았다.
그 돈으로 그들의 오랜 꿈인 땅 1헥타르를 구입하여 그 위에 농산물 총판장을 열어 갈 건물을 지었다. 이제 한 푼도 안 남았다고 하는 그들의 얼굴에서 희망찬 미래가 엿보였다. 이들은 지금껏 돈을 모아 총판장을 하려는 꿈을 이루기 위해 가난하게 살았지만, 이제부터는 수익금으로 집도 고치고 사람답게 살겠다는 의지를 보인다. 그러면서 희망재단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며 귀한 닭 2마리를 나에게 선물했다. 지금은 일하는 철이라 몸과 얼굴이 마르고 형편없어 보이지만 이 기간이 지나면 더 좋은 모습의 자신들을 볼 수 있을 거라고 수줍게 말했다. 그렇게 험한 생을 살았으면서도 어쩌면 이렇게 아름다운 마음을 간직할 수 있을까 생각하니 이들이 한없이 존경스러워지기까지 했다.
이번 현지 방문은 코로나 기간에 전화통화나 인터넷 화상 연결로만 사업을 확인하고 안부를 물을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서 벗어나, 그들을 현장에서 만날 수 있어서 무엇보다 기쁘고 반가운 시간이었다. 그동안의 사업 진행은 이메일이나 전화통화로 충분히 확인했지만 눈으로 보니 코로나 19의 피해는 더욱 심각하게 와닿았다. 물론 어려운 중에도 그들의 성실함은 더욱 빛을 발해, 나름의 성과를 거두며 발전하고 있어 감동을 주었다.
현지 파트너 단체의 노력과 수고가 얼마나 큰 것인지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고 고마운 마음이었다. 기후변화로 인한 식수 개발의 시급성, 어린이들을 위한 교육과 어린 나이에 엄마가 된 한부모들을 위한 교육과 자립 등 많은 과제를 확인하며 희망재단의 역할을 더욱 다짐하고 확신하는 시간이었다.
작성 / 한국희망재단 이철순 상임이사
편집/ 이인선 홍보 담당, 이지영 인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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